[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호랑의 눈/유계영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호랑의 눈/유계영

입력 2016-10-21 17:58
수정 2016-10-22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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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벌레라고 부르자

사람들이 자세히 보기 위해 다가왔다

오늘은 긴 여행을 꿈으로 꾼 뒤의 짐 가방

검은 허리를 무너뜨리며 떠다니는 새벽

그림자를 아껴 쓰려고 앙상하게 사는 나무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은 미끄러운 경험

바람에게 그림자가 없다고 믿는다면

떨어지는 잎사귀에게도 속력이 없다

증상 없는 병을 병이라 부르지 않으니

나는 이름도 없는 나날

오늘은 짐 가방처럼 놓여 있다. 긴 여행은 꿈으로 다녀왔다. 허공을 수색하며 유연하게 밤의 허리를 꺾는 새벽이 있고, 자신의 그림자조차 안타까운 나무가 앙상한 생을 살아가고 있다. 아름답고 쓸쓸해서,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아름다움은 고독한 것인지, 이유 없이 애잔하고 아프고 서러운 것인지 계속 물었다. 또 끄덕였다. 그래,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은 얼음판 위에 선 듯 휘청이는 순간이지. 아니, 미끄럼틀을 내려오듯 내 의지 따위와는 무관하게 맡겨진 시간이야. 세상은 바람의 그림자를 불신하고 낙엽의 속력을 재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증상 없는 병을 앓는 우리는 바람의 그림자에 뒤척이고 낙엽의 속력에 웅크린다. 가을은 알고 있을까? 이 보이지 않는 연대를. 이유 없이 외롭고 슬프고 쓸쓸한, 아름다움 속에서 독을 꺼내는 인간의 싸움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이름 없는 나날로 살아가지만, 자신을 벌레라고 부를 만큼 우리 모두가 간절하다는 것을.

신용목 시인
2016-10-2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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