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시티 수사지시·외교차관 인사 등 국정재개 비판에 적극 반박
‘최순실 사태’로 사실상 마비상태였던 청와대가 일부 국정 운영을 재개하면서 이를 비판하는 야권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최 씨의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지면서 ‘낮은 자세’로 바짝 엎드려 있던 청와대가 반격 모드로 선회하는 모양새여서 배경이 주목된다.
청와대와 야당이 충돌하는 지점은 박근혜 대통령이 해운대 엘시티(LCT) 비리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서 엄단하라고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게 지시했다는 대목이다.
아울러 박 대통령이 외교부 차관 인사를 단행하고 조태용 국가안보실 1차장을 포함한 정부 고위 실무대표단을 미국에 급파한 것은 물론 내주 국무회의 주재를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지자, 야권에서는 ‘꼼수’ 또는 ‘물타기’ 등의 강도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17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이 정상적이고 최소한으로 국정을 이끌어가는 기조를 꼼수라고 하는 것은 문제”라며 “기본적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업무를 무작정 비판하는 것은 야당 프레임의 논리로 우리를 완전히 무장해제시키겠다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특히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당초 박 대통령의 엘시티 수사 지시를 ‘낭보’라고 평가했다가 이날 ‘꼼수’라고 입장 전환한 것을 겨냥, “정반대 입장을 오락가락하면서 대통령을 궁지로만 몰려는 태도가 야당 대표의 태도로서 올바른 것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한 참모도 “대통령 본인도 잘못한 게 있으니 다 감수를 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의혹 제기가 너무 심해져서 국가가 혼돈 상태로 되니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측근들의 조언이 많다”고 전했다.
또 다른 참모는 “지금 정국 상황은 강 대 강이라고 볼 수 있다”며 “야당이 장외투쟁을 선언해서 선전포고를 했으니 우리는 필요한 일들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청와대의 강공 전환은 서울 도심 촛불집회에 100만명이 몰려와 퇴진을 촉구하고, 박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가 임박하는 등 코너에 몰린 현 상황을 고려할 때 다소 의외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 지지율도 한국갤럽 기준으로 2주 연속 5%에 그친 데다 리얼미터 조사마저 이날 처음으로 한 자릿수(9.9%)를 기록했고, 이번 주말에도 대규모 촛불집회가 벌어질 예정이다.
그럼에도 국정 업무를 재개하고 각종 의혹과 비난에 강경 대응키로 한 것은 혼란한 시국에서도 국정의 운영주체로서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미지 회복과 지지층 재결집을 꾀하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이 여야 합의로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에게 법적 권한 보장을 약속하고 여야 대표들과의 영수회담을 제안하는 등 정국 해소를 위한 전향적 태도를 보였음에도 강경일변도로 대통령 퇴진을 압박하며 정치적 해결보다는 장외투쟁을 선택한 야당과 차별화를 시도하겠다는 계산도 있어 보인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국회에서 추천하는 총리에게 전권을 주고 영수회담도 하자고 제안해서 답을 기다리고 있지만, 야당에서 답을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그때까지 필요한 일을 안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시에 야권과 언론을 중심으로 쏟아져나오는 최순실 씨 관련 의혹들이 마치 전부 다 박 대통령과 직접 연루된 것처럼 받아들이는 여론의 흐름을 끊기 위해 강한 메시지를 종종 곁들이면서, 이를 통해 실망한 지지층의 마음을 다시 돌리려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절차 진행과 한일군사정보협정 체결 등 기존의 외교·안보 정책의 기조를 흔들림 없이 고수하고, 국정 역사교과서도 철회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 역시 지지층 재결집을 의식한 행보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엘시티 비리 사건을 도마 위에 올려 여론의 관심을 다소 분산시키고 검찰 조사를 늦춤으로써 시간을 벌면서 여론의 틈새를 엿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 과정에서 외교차관 인사 단행은 국정 재개의 신호일 뿐만 아니라 ‘최순실 사태’ 이후 기강이 무너진 공직사회에 아직은 누가 인사권자인지를 각인시키려는 다목적 포석으로 분석된다.
박 대통령의 이와 같은 태세 전환은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인사들이나 보수 성향 주요 인사들의 조언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현 정부에서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정홍원 전 총리가 이날 개인 입장을 내 현 시국을 “마녀사냥”이라고 표현하면서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적,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일방적으로 추궁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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