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이름’으로 불의와 타협한 사법부의 실체

‘법의 이름’으로 불의와 타협한 사법부의 실체

이은주 기자
이은주 기자
입력 2025-05-02 00:35
수정 2025-05-02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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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배반한 판사들
한스 페터 그라베르 지음/정연순 옮김
진실의힘/488쪽/2만 7000원

나치·아파르트헤이트까지 정당화
정부 권위에 복종했던 ‘법치 파괴’
합법 속 자유·권리 침해 판결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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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법철학자 한스 페터 그라베르 교수는 법관들이 정부나 독재자 등의 억압에 동조하는 이유를 심도 있게 분석하며 “억압적인 환경에서도 판사와 법원이 정의를 추구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주어진 재량권을 행사해 권력의 억압을 견제하거나 완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로비에 자리한 정의의 여신상. 서울신문 DB
세계적인 법철학자 한스 페터 그라베르 교수는 법관들이 정부나 독재자 등의 억압에 동조하는 이유를 심도 있게 분석하며 “억압적인 환경에서도 판사와 법원이 정의를 추구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주어진 재량권을 행사해 권력의 억압을 견제하거나 완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로비에 자리한 정의의 여신상.
서울신문 DB


12·3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파면 결정은 우리 사회에 법치주의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특히 이 과정에서 사법부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수호자 역할을 제대로 할 것인지 이목이 쏠렸다. 과거 법원이 군사정권의 비상계엄 선포를 정당화하거나 고문으로 얻어 낸 허위자백을 증거로 인정하는 등 정권의 의중을 뒷받침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법철학자 한스 페터 그라베르 노르웨이 오슬로대 법학과 교수는 “사법부가 정의와 인권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독립성을 보장하고 많은 권한을 부여하지만 현실 속 사법부와 판사는 대개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나치 독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라틴아메리카의 군사독재 정권은 물론 자유주의 사회인 미국과 영국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정권의 억압을 정당화하고 타협하는 사법부의 행태를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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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사례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정부의 구금 명령을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한 영국 상원의 결정과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미국 대법원의 강제 불임수술 정당화 판결 등을 거론한다. 이 판결들은 모두 형식상 합법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한 판결이었다.

판사들이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정부에 동조하는 이유는 계급적 이해관계를 위해 권위주의 정부를 지지하거나 직업 경력과 승진을 위해 정권에 협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판사는 본질적으로 법의 권위에 복종하는 존재이기에 권위주의 정권이 만든 실정법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국가가 판사의 면책 특권을 인정하고 있고 역사적으로 억압에 동조한 판사들을 처벌한 사례는 별로 없다. 저자는 “판사들은 거의 예외 없이 지난 정권의 악행과 억압에 가담한 책임을 묻는 법정에 서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도 나치 독일에 동조한 책임을 물어 형사 처벌을 받은 판사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대부분 법무부에서 정책 수립과 법 집행에 직접 관여한 공무원들이었다.

다행히 양심에 따라 억압에 저항하고 정의를 추구한 판사들도 있었다. 나치 독일에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안락사 프로그램에 항의한 로타 크라이지히 판사, 나치 점령군에게 저항하며 집단 사임한 노르웨이 대법관들, 인종차별적인 법 적용을 거부한 벨기에 법원 등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판사 개개인이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자신의 판단이 미칠 영향을 인식하는 것이다. 법률가들은 흔히 사람을 추상적 법적 범주에 맞춰 인식하도록 훈련받는데 이는 인간적인 고통에 무감각하게 만들고 자신의 판결이 낳을 반인권적 결과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저자는 “역사적 사례들은 판사들이 자신의 판결이 당사자에게 줄 인간적 고통과 사회에 일으킬 결과를 제대로 이해하고 재량권을 행사한다면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강조한다.
2025-05-0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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