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이언숙 옮/ 민음사/385쪽/1만 9500원]
일본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사회보장비용의 증가, 경직된 기업 조직과 노동시장으로 인한 청년 실업 등을 고려하면 일본의 미래는 ‘절망적’이라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다. ‘잃어버린 20년’ 속에서 성장한 젊은이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경제활동인구 대비 고령자 비율은 점점 높아지고, 극심한 취업난은 비정규직과 프리터(프리랜서와 아르바이터의 일본식 조어)를 양산했다. 고용 상황이 불안하니 결혼과 출산에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여기에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이라는 변수까지 등장했다.
일본의 20대 젊은이들은 누가 봐도 절망적인 환경에 처해 있음에도 행복하다. 기대할 미래가 없기에 미래를 위해 청춘을 희생하거나 불행해하지 않지만 불안감은 있다는 그들은 장기 불황이 낳은 역설적인 인간형이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후 거리에서 모금활동에 나서고(왼쪽), 월드컵 거리응원에서 즐거워하는 일본의 젊은이들. 민음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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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20대 젊은이들은 누가 봐도 절망적인 환경에 처해 있음에도 행복하다. 기대할 미래가 없기에 미래를 위해 청춘을 희생하거나 불행해하지 않지만 불안감은 있다는 그들은 장기 불황이 낳은 역설적인 인간형이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후 거리에서 모금활동에 나서고(왼쪽), 월드컵 거리응원에서 즐거워하는 일본의 젊은이들. 민음사 제공
이리저리 뜯어봐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이 힘든 사회적 상황 속에서 20대 젊은이들의 75%가 “지금 나는 행복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2011년 일본 내각부의 ‘일본 국민 생활 만족도 조사’ 결과다. 해당 조사가 실시된 이래 최고치이자 일본 경제가 악화일로에 접어든 상태에서 나온 뜻밖의 결과에 일본은 충격에 휩싸였다. ‘득도의 경지’에 오른 듯 초연한 자세로 살아가는 일본 신세대 젊은이들을 지칭해 ‘사토리 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일본의 신예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29)의 책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장기 불황이 낳은 역설적인 인간형 ‘사토리 세대’의 정체를 파헤친다. 2011년 일본에서 책을 낼 당시 26세였던 저자는 자기 또래의 젊은이들이 절망적인 현실에도 불구하고 행복감을 느끼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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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리 없다’라는 생각이 들 때 인간은 ‘지금 행복하다’라고 생각한다.…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소박하게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다’라는 생각을 믿지 않는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그저 ‘끝나지 않는 일상’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을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왠지 가슴은 찡한데 그럴듯하다. 그의 주장은 막연한 관념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지금은 불행하지만 장차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 “지금 불행하다” “지금 생활에 불만족을 느낀다”고 대답한다. 실제로 고도성장기나 거품경제 시기에 젊은이들의 생활 만족도는 오히려 낮게 나타났다. 미래에 더 행복할 것이라고 믿으며 공부에, 직장에 목숨을 걸었고 그래서 현실은 불행했다.
물론 20대의 생활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 주변 상황이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같은 설문조사의 다른 항목을 보면 ‘생활하면서 고민이나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응답이 1980년대 후반부터 계속 상승해 2010년 63.1%에 달했다. 저자는 일본 젊은이들의 자국 사회에 대한 만족도가 1993년부터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는 조사 결과도 제시한다. 이처럼 ‘불안하지만 행복하다’는 모순적인 태도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없는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후루이치는 거품경제 붕괴와 불황 장기화의 책임을 젊은이들에게 돌릴 수는 없다며 기성세대가 내놓는 ‘젊은이론’도 비판한다. ‘요즘 젊은이들’ 운운하며 불행의 책임을 그들에게 떠넘기는 태도, ‘젊은이에게 희망이 있다’는 식으로 찬양하는 것 모두 그들을 타자화(他者化)하는 담론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저자는 책에서 출세나 명예, 돈벌이에 욕심이 없이 자기 주변의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특징을 하나씩 거론하며 이들 삶의 방식이 결코 자포자기 혹은 자기 파괴가 아니라고 분석한다. 한때 당연시되던 ‘일류대 진학, 대기업 입사, 중산층 가정’이라는 꿈 같은 시나리오가 폐기 처분된 지금 시대에 젊은이들이 취할 수 있는 삶의 태도란 어려운 상황에 안주하고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찾는 것이다. 그들이 꿈꿀 수 있는 최대한의 행복이 바로 그것이니까.
일본 젊은이들의 현실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지만 책에서 언급되는 많은 현실은 ‘일본’을 ‘한국’으로 바꿔 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한국과 비슷하다. 모두가 중산층이라는 자본주의 신화가 깨진 지 오래인 일본에서 젊은이들이 혁명 대신 현실 안주를 택하는 현상은 가까운 미래, 어쩌면 현재인 한국을 읽는 것 같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사토리 세대
일본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태어나 현재 10~20대 중·후반 나이대로 돈벌이나 출세에 관심 없이 현실에 만족하는 젊은이들을 가리킨다. 사토리는 ‘득도’ ‘깨달음’이라는 뜻으로 버블경제 붕괴 후 닥친 장기 불황 속에서 성장해 물질적 풍요에 집착하지 않는 성향을 보인다. 국가보다는 인류애 실현을 위해 기꺼이 뭉치기도 하며 대도시에서 외롭게 지내는 것보다 작은 공동체 안에서 지내는 것을 선호한다.
2014-12-2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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