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安함 어머니의 노래/시인 손택수

天安함 어머니의 노래/시인 손택수

입력 2010-04-16 00:00
수정 2010-04-16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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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골목에 매화가 피었냐고 했지

매화 향을 흠흠거리며 나들이를 가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고 했지

에미의 식탁에 오른 봄나물들을 생각하면

가득가득 누른 공기밥을 한 그릇 더 비우고 싶다고도 했지

아들아, 올봄의 바다는 노래가 아니다

갈매기도 파도도 수평선을 넘어오는 바람도

제 곡조를 잃고 휘청거리기만 하는구나

심청이 공양미 삼백석에 제물이 되었다는 바다

네게는 환생의 연꽃 대신 침몰한 배만 있구나

크레인 줄을 타고 끌려 올라오는 함미 앞에서

에미는 차라리 눈을 감고 싶구나

물속에서 춥지는 않았니

등뼈가 오그라드는 수압 속에 아프지는 않았니

전우들과 함께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네 편지 속

바다는 파도 소리가 평화롭기만 했는데

네 살갗을 파고드는 비명소리

물감옥 속에 갇혀 살려 달라 벽을 긁는 울음 소리

내 눈속에 너의 바다가 다 들어왔구나

넘치고 넘쳐도 다시 넘치는 바다가 네 식은 몸을 쓰다듬고 있구나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이 무력한 에미를 용서하렴

멀리 일 나가서 갓난 너를 생각하면 乳腺(유선)이 돌았듯

가슴에 고이는 슬픔을 어찌할 수 없구나

하지만 진실로 슬픈 것은 바다 속의 침몰이 아니라

망각으로의 침몰

잊지 않으련다 아들아

너를 찾아 뛰어들다 숨져간 사람들

무사귀환하길 두 손 그러모으고 기도를 하던 사람들

그리고 잊지 않으련다 네가 지키다 떠난 어머니의 나라

너의 피와 살은 이 땅의 피와 살이니

천년을 죽지 않고 다시 태어날 바람과 흙이니

아들아, 너는 영원한 772함의 수병

하늘(天) 아래 모든 세상이 편안(安)할 때까지

어머니의 바다를 지키는 등불

그러니 이제 잠 들렴, 편히 잠 들렴

거친 파도 속 고된 훈련도 쉬고

떠나온 집 에미 아비 걱정도 쉬고

가슴에 꾹 다문 수평선 하나 걸어놓고

하염없이 글썽이는 바다

●손택수 시인은 1970년 전남 담양 출생. 경남대 국문과 졸업.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시집 ‘호랑이 발자국’, ‘목련 전차’. 오늘의젊은예술가상, 신동엽창작상 등 수상.
2010-04-1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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