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일관성·’레거시’ 의식…지상군 투입시 ‘이라크전 수렁’ 재연 우려’적극적 개입’ 정치적 압박 거세…연합군 공습+이라크 정부군·시리아 반군 강화 상황따라 특수부대 작전 강화 주목’아사드 축출’-’IS 제거’ 시리아 해법 딜레마
파리 테러사건의 후폭풍 속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상군 투입론’에 확실히 선을 긋고 나왔다.16일(현지시간) 터키 G20(주요 20국) 정상회의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다. 시리아와 이라크에 포진한 IS를 격퇴하기 위해 미국의 지상군을 현지에 파견하는 것은 “실수”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공화당은 물론이고 집권당인 민주당에서조차 기존 전략을 수정하고 보다 적극적인 군사행동에 나서라는 주문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현행 전략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논리는 전통적 전쟁 방식대로 지상군을 투입하는 것으로는 IS의 발호와 테러리즘을 근본적으로 뿌리뽑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행대로 국제연합군과 함께 IS의 주요 근거지를 지속적으로 공습하고 이라크 정부군과 시리아 반군이 가세하는 구도로 가면 IS 세력을 ‘봉쇄’(contain)하고 궁극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다는 주장인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회견에서 최근 이라크 북서부 신자르와 시리아 북부 코바니 지역을 탈환한 것을 거론하며 “현행 전략이 작동되고 있다”고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IS가 장악한 영토가 줄어들고 있다”며 “전사들의 유입이 감소되고 위협의 정도가 완화됐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현행 전략 고수는 파리 테러사건의 파장과 충격을 감안해볼 때 다분히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피하기 힘들다.
오바마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미국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국제연합군이 주말 동안 IS의 주요 석유시설을 공습했으나, 파리 테러사건에 상응하는 ‘응징 효과’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 정리를 개인적 소신과 함께 ‘오바마 레거시(업적)’와 연결지어 해석하는 기류가 지배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신(新) 고립주의를 기조로 하는 임기 후반 외교독트린을 발표하면서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의 ‘종전’을 거듭 천명하고, 더이상 분쟁지역에 지상군을 추가로 파병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여기에는 전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해가면서 10년간 끌어왔던 이라크 전쟁이 사태 해결은커녕 오히려 미국의 발목을 잡는 ‘수렁’이 됐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나아가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고리로 이라크와 시리아 일대에 다시 지상군을 파병한다면 지금까지의 대외정책 기조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오바마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불리함에도 현행 정책을 유지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이라며 “임기를 1년여 남겨둔 시점에서 기존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을 업적으로 여기고 있다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재 이라크에 나가있는 미군의 10배에 해당하는 3만 명의 지상군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건의 발생지가 미국 국내가 아니라 프랑스 파리라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직접적 테러를 당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주’가 되고 미국은 ‘종’이 되는 구도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상군을 투입하더라도 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차원에서 추진할 문제이지, 미국이 앞장서서 거론할 필요는 없다는게 오바마 행정부의 상황 판단이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국가들은 IS에 대한 강력한 응징을 천명하면서도 실제로 지상군을 투입하는 문제를 놓고는 소극적이라는게 외교소식통들의 관측이다.
시리아 사태의 해법이 명쾌하게 ‘교통정리’돼 있지 않은 점도 변수다. 오바마 대통령은 현재 시리아에 포진한 IS도 제거해야 하지만, IS와 대척점에 있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도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직접적으로 지상군을 투입해 IS와 전면전을 벌일 경우 아사드 정권에게 뜻하지 않은 반사이익을 가져다줄 가능성이 크다. 외교소식통은 “지금의 상황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딜레마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현행 전략기조를 고수하는 것만으로는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든 점이 고민이다.
이에 따라 대규모 지상군 투입은 아니더라도, 기존보다 대응 수위와 강도를 높이는 쪽으로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출신인 미셸 플루노이와 리처드 폰테인 신미국 안보센터 소장은 최근 보고서에서 일정한 규모의 특수부대를 이라크 정부군과 IS가 싸우는 최전선에 배치하고 이 부대가 미군의 정밀 공습을 유도하는 역할을 맡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은 최근 50명 규모의 특수부대를 시리아에 파견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또 이라크 정부군의 대대급에 미군 고문관들을 배치해 이들이 사령관들에게 군사작전에 관한 자문을 해주고, 이라크 정부군 외에도 크루드 자치군과 이라크 수니파 부족에게도 무기와 탄약을 직접 제공하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일각에서는 IS 격퇴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해법은 시리아 내전사태를 종식시켜 강력한 중앙정부를 구축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미국 전쟁연구소의 할린 감비르 수석애널리스트는 “결국 이라크와 시리아에 강력한 정부가 들어서는 것이 IS를 격퇴시키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은 존 케리 국무장관을 중심으로 냉랭한 관계에 놓여 있던 러시아와 이란까지 끌어들여 시리아 문제에 대한 ‘정치적 해법’을 끌어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오스트리아 빈에서 제2차 국제회담에 유럽과 미국, 러시아, 중국,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모든 관계국이 참석해 “공통의 이해를 달성했다”고 평가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주목된다. 하지만, 이 해법의 핵심은 아사드 정권의 퇴출이 될 수밖에 없어 친(親) 아사드 성향의 러시아가 순순히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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