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동북아 전문가 쑤하오 교수 “사드 운용, 미국이 하기에 못믿어”

▲ 중국의 대표적인 외교 전략가이자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쑤하오 외교학원 교수가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사드 배치 이후의 한·중 관계 등을 얘기하고 있다. |
한·미가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기로 결정해 한·중 관계에 격변이 예상된다. 서울신문은 지난 10일 중국의 외교 국방 및 동북아 전문가인 쑤하오(蘇浩) 외교학원 교수를 만나 사드 배치 이후의 한·중 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대해 물었다. 쑤 교수는 중국의 대표적인 외
교 전략가로 외교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전문가이기에 그를 통해 향후 중국 정부의 방향을 읽을 수 있다.
한·미 양국의 사드 배치를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이 미국의 사드 배치 요구를 뿌리칠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배치 결정을 최대한 연기할 수는 있었다. 한국이 사드 배치를 연말까지만 연기했더라도 중국과 한국은 더 많은 소통을 할 수 있었고, 미국과 한국의 정치 일정상 국면 전환을 꾀할 수도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가 한·중 관계의 발전이었는데, 한순간에 허물어진 것 같아 안타깝다.
한·중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중국은 사드의 본질을 ‘중국 감시’로 본다. 중국과 한국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이다. 그런데 ‘동반자’인 한국이 중국을 겨냥한 무기 시스템을 들여다 놓기로 했다. 중국은 당연히 이 관계에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친구이자 형제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현재로선 객관적 사실이자 중국 인민의 착잡한 심정이다. 오는 9월 항저우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 때 양국 정상이 매우 불편하게 만나는 등 외교적 교류에 큰 차질이 빚어질 것이다. 중국은 전략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사드에 대항하는 군사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할 것이다. 경제도, 무역도, 관광도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라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일부 관영매체는 공공연하게 한국에 대한 제재나 보복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이 실제로 실현될 것인가.
-보복이나 제재 수준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 인사들의 입국제한, 무역거래 중단 등의 극단적인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다양한 방면에서의 교류와 협력에서 차질은 불가피하다.
사드 배치를 기점으로 중국이 대북 제재를 완화되는 등 북한을 전략적 파트너로 끌어들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런 동의하지 않는다. 대북 제재와 사드 배치는 별개다. 사드 배치로 큰 장애물이 생겼지만, 이것은 중국과 한국 간의 일이다. 북한의 핵 보유는 그 자체로 중국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타협할 사안이 아니다. 한국 사드 배치로 중·북 관계가 더 가까워질 필요는 없다. 한반도 비핵화는 절대 바뀌지 않는 중국의 원칙이자 목표이다.
중국은 왜 사드가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한국의 설명을 믿지 못하나.
-한국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미국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사드는 한국의 무기가 아니라 미국의 무기이다. 레이더 범위를 북한으로 좁히거나 중국으로 넓히는 조작도 모두 미국의 손에 달렸다.
중국은 미국의 의도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중국이 주한미군 주둔을 반대했나? 아니다. 주한미군은 북한을 겨냥한 군대이지 중국을 겨냥한 군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드는 미국의 미사일방어시스템(MD) 구축의 일환으로,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의 태평양 군사체계의 ‘화룡점정’이다. 미국은 부상하는 중국을 전략상의 적으로 간주한 지 오래다.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이 중국에 밀착하는 것을 당연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미는 왜 사드 배치를 빨리 발표했다고 생각하나.
-미국 입장에서는 남중국해 중재재판소 판결에 임박해 배치를 발표함으로써 중국의 외교적 대응력을 분산시키려 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사드 배치를 둘러싼 내부 논쟁을 서둘러 종결지을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해를 넘기면 대선 국면이 본격화돼 결정 자체가 힘들어지리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사드 배치 결정에는 한·미의 강력한 대북 봉쇄 의지가 작동했다. 한·미의 강경 대응이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보나.
-북한을 굴복시키거나 붕괴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이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못지않게 정교한 방식으로 정치적 위기를 돌파해 가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새로운 정치 세력을 꾸려 북한 사회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북한이 항복할 것이라는 판단은 오히려 북한을 더 결속시킬 뿐이다.
미국 내에서는 북한 핵 시설 선제 타격론도 나오고 있다.
-미국 정부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북한의 핵 시설은 한국과 중국에는 직접적인 위협이지만, 미국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미국이 태평양 지역에서의 군사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좋은 구실을 하고 있다. 다만, 북한 내부가 붕괴한다면 미국은 군사 개입에 나설 것이다. 이 경우 중국도 개입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은 북한에서 군대가 맞닥뜨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
한국과 미국은 중국이 대북 제재를 더 강하게 하길 바란다.
-현재의 북핵 교착 책임을 중국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 미국은 스스로의 의도가 있어 중국 책임론을 외치고 있지만, 한국은 신중해야 한다. 북한 핵 때문에 실질적인 위협을 받는 국가는 한국과 중국이다. 둘은 책임을 탓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북핵을 해결할지에 대해 더욱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 유엔의 틀을 벗어난 개별적인 제재는 중국의 외교 원칙과 맞지 않는다.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제재와 대화를 동시에 주장하고 있다. 무게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제재와 대화 모두 한반도 비핵화의 수단이다. 현재 생활을 객관적으로 인정한다면 제재 이행이 우선이다. 다만, 북한 붕괴를 위한 제재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화를 준비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리수용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방중으로 북·중이 관계 개선의 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나.
-중국은 북한을 제재하는 동시에 양국 관계의 정상화도 꾀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리수용 방중은 당 대 당 교류로 이해해야 한다. 리수용을 통해 북한의 상황을 듣고 우리 입장도 확실히 전달해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북한과 중국의 ‘냉담한 관계’는 리수용 방중으로 해결될 성질이 아니다. 다만, 중국은 북한을 적으로 만들 수 없는 만큼 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시진핑 주석이 직접 김정은 위원장을 설득하는 방법은 어떤가.
-다양한 통로로 양국이 소통하는 것과 시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만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북한이 지금처럼 태도변화를 보이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 따라서 김정은 방중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별로 없다. 그가 방중한다고 반길 사람이 없다.
중국은 어떤 방식의 한반도 통일을 원하나.
-남·북이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길 바란다. 무력으로 제압하거나 일방적으로 집어삼키는 방식은 북한 주민들이 반대할 것이다. 다만,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상황을 북한 주민들이 더 좋다고 선택해 북한이 한국 경제 체제에 스며드는 통일이 실현된다면 중국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베이징 글·사진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쑤하오 교수 = 1958년 중국 윈난성 훙허시 출생. 베이징사범대에서 역사학과 국제관계사로 석사를, 외교학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받은 뒤 30년째 외교학원 교수로 일하고 있다. 외교부 산하 싱크탱크인 외교학원은 1955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가 세운 대학으로 ‘외교관 양성의 요람’이다. 2011년부터 이 학교의 ‘전략 및 평화연구센터 주임’을 맡고 있는 쑤 교수는 중국 외교 전략가 중 대표적인 ‘지한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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