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백년의 꿈/황수정 수석논설위원

[길섶에서] 백년의 꿈/황수정 수석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22-10-27 21:34
수정 2022-10-28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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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서
길섶에서
햇밤을 씻다 말고 기겁을 한다. 옴마야. 뽀얀 밤벌레 한 마리가 쏙 빠져나왔다. 내 호들갑에 녀석이 더 놀랐다. 아기 손톱만 한 몸을 밥풀떼기마냥 돌돌 말았다. 이래도 벌레로 보이냐, 시치미를 똑 떼면서.

이 녀석을 오래전부터 잘 안다. 우리들 몸피에 살이 오르면 어른들은 언제나 “고놈, 밤벌레 같은 놈”.

그런 날은 햇밤을 솥째 삶던 시월 밤이었다. 깨벌레도 불려 나왔다. 부지런한 밥숟갈에 내 볼살이 부풀 때는 “깨버러지 같은 내 새끼”.

그런 날은 하얀 깨꽃이 달보다 환한 유월 밤이었을 테고. 어린 것들도 살 오르고 벌레들도 살 찌고. 밤 익고 깨 익어 나눠 먹는 계절이면 버러지도 함께 축복의 말이 됐다.

산중 스님의 농담 같은 이야기에 혼자 웃는다. 이불 속에 찾아든 지네한테 그 이불 보시하고 밤새 떨었다지. 녀석이 숨은 밤톨을 화단가에 놓는다. 단풍나무 아래서 백척 밤나무가 되는 백년꿈을 너는 꾸어라.

실없는 꿈을 꾸는 사이. 밤 한 냄비 까맣게 타 버린 새까만 가을밤.
2022-10-2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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