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 원전은 안전한가/전경수 서울대 인류학 교수

[글로벌 시대] 원전은 안전한가/전경수 서울대 인류학 교수

입력 2011-04-18 00:00
수정 2011-04-18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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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만들어진다. 누군가가 어떤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 만든 과정의 산물이 신화다. 신화는 무엇인가 불안전한 상황이 전개될 때, 그 상황이 타개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붙잡아 주는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진다. 그리고 유사한 상황이 전개될 때마다 반복해서 불거져 나오는 속성을 지닌 것이 신화이고, 이 과정을 흔히 재창조라고 말한다. 단군신화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 신화가 내포하는 속성의 일부분이 사실일 수는 있다. 부분과 전체를 혼동하는 메커니즘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이 단군신화를 송두리째 사실로 믿고 또 남으로 하여금 믿게 하려고 일을 저지른다. 대표적인 것이 평양에서 만들어 놓은 ‘단군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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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수 서울대 인류학 교수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 교수
원자력은 안전하고 깨끗하다. 한동안 ‘안전’에 대해서만 광고하더니 이제는 ‘청정’이 첨가되었다. 이산화탄소로 겁먹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원자력발전소 옹호론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어떻든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상징성은 ‘안전’이고, 안전과 원자력발전이라는 두 단어의 결합이 신화의 지위로 상승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해결할 수 있다면, 왜 신화 창조를 시도하는가?

“한국의 원전은 일본 것보다도 안전하다. 왜냐하면, 일본의 전문가들보다는 한국의 전문가들이 훨씬 더 원자력공학의 이론에 강하기 때문이다. 서울대에 전체 수석으로 입학하였던 선배 한 분은 원자력공학을 전공하였다. 그분은 미국 유학을 통하여 실력을 연마하였다. 그러한 우수한 두뇌들을 바탕으로 건설된 발전시설이기 때문에 일본보다도 한국의 전문가들이 원자력에 관한 한 훨씬 더 치밀하고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다. 그 증거로서 한국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기술이 외국에 수출되고, 대통령이 앞장서서 그 작업을 진행시키는 개가를 올린 바 있다. 기술도 월등히 좋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뒷받침도 강력하기 때문에 한국의 원자력발전소는 안전할 수밖에 없다.

일본인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맞은 역사적 공포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원자력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이 있다. 그래서 일본의 원자력공학 분야는 가장 우수한 두뇌들이 모인 분야가 아니다. 현재 후쿠시마에서 전개되고 있는 지지부진한 사고처리도 그러한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한국에서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거대 전기회사가 엄청난 두뇌조직으로 운영되고 있고, 또 원자력에 대해서 적극적이고도 신속하게 대처해왔기 때문에 일본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일본은 지진대가 발달해 있기 때문에 원자력발전소들은 모두 지진으로 인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는 지진이 발생하지 않고 발생하더라도 미약하기 때문에, 한반도에 건설된 원자력발전소는 지진과는 관계없는 안전지대에 있다. 그 증거로서 태평양 쪽에 건설된 일본의 원자력발전소들은 지진과 해일의 피해에 대비한 방어설계를 하였지만, 동해(일본해) 쪽에 면해 있는 원자력발전소들은 내진설계가 아주 미약하다. 더군다나 한국은 상대적으로 지진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한반도에서는 지진으로 인해 원전사고가 날 위험성은 없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은 것을 한반도에서 상정하는 것은 한낱 기우일 뿐이다.”

한국의 원자력발전소는 안전하다.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신화는 이렇게 만들어질 수 있다. 대통령도, 한전 사장도 내가 만든 신화를 믿고 싶을 것이다. 이 신화를 믿어서 안전할 수만 있다면 나도 믿고 싶다. 스리마일섬(미국)과 체르노빌(소련)에 이어서 후쿠시마(일본)의 원자력발전소가 사고를 일으켰다. 다음 차례는 어디인가? 지구에서 원전 사고는 필연적이다. 시간과 장소를 결정하는 일만 남았다. 안전신화의 재창조를 시도할 일이 아니고, 원자력은 근본적으로 불안전한 것이기 때문에 안전확보를 위한 노력의 과정을 솔직하고도 성심껏 설명하는 것이 공복들의 임무이다. 시민을 바보로 간주하는 누습부터 버려야 한다.
2011-04-1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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