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사 환영…중소형사는 효력에 회의적 “조심하겠지만, 로비 막기는 어려울 것”
국민연금이 고질적인 비리 관행을 개선하고자 ‘로비 삼진아웃제’를 골자로 한 기금운용혁신방안을 내놓자 증권업계가 술렁이고 있다.자산 340조원을 보유한 국내 최대 투자기관인 국민연금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의 수익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슈퍼갑’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주식거래 주문을 받느냐, 못 받느냐에 따라 영업실적이 좌우되는 증권사들은 이번 혁신방안에 따른 득실계산을 하느라 분주하다.
대형 증권사들은 풍부한 리서치 인력을 보유한 만큼 유리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중소형 증권사들은 정량평가 위주로 거래 증권사를 선정한다면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번 혁신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 로비 근절 가능성에 회의적 반응
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등이 국민연금 기금운용과 관련해 로비하다 적발되면 최장 5년간 거래를 차단하고 3차례 걸리면 영구적으로 거래를 막는 것을 골자로 한 혁신방안을 지난 29일 발표했다.
혁신안에는 거래기관 선정 때 불공정 논란이 됐던 ‘정성평가’를 전면 폐지하고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통해 정량평가만을 토대로 업체를 결정하도록 하는 방안도 있다.
증권업계가 이번 혁신안과 관련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로비 기준이다.
A 증권사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금지한다는 지침이 내려오지 않아 지금으로서는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고 말했다.
B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문제가 계속 불거진 탓에 암묵적으로 서로 조심하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어디까지가 로비인지 기준을 서둘러서 명확히 정해줘야 한다. 영업하는 처지에서 사람을 아예 안 만날 수는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성 접대 파문 등 온갖 잡음이 커지자 증권사 브로커들의 회사 방문 자제를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지금은 세미나 등 업무상 방문은 허용됐지만, 외부에서 약속은 알아서 자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로비를 막는다고 해서 오랜 관행이 없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C 증권사 관계자는 “앞으로 서로 조심하겠지만, 로비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형 증권사는 리서치 기반이 잘 돼 있어 큰 문제 없지만 그렇지 않은 중소형사들은 로비 유혹을 떨쳐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D 증권사 관계자도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사람을 직접 만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영업 방식이어서 관행이 쉽게 바뀔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철저한 감시가 이뤄지지 않으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E 증권사 관계자는 “업계에서 어느 정도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식사나 기본적인 친목 관계를 로비로 치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 정성평가 폐지에 중소형사들 반발
국민연금이 거래기관 선정 과정에서 정성평가를 배제하고 정량평가만 하기로 한 것에는 업계의 의견이 엇갈렸다.
대형사가 대체로 환영했다. 하지만, 중소형사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정량평가가 업체 선정의 핵심 잣대가 되면 서비스의 질보다는 양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대형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다수 인력을 기반으로 물량 공세를 펼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인력 기반이 취약한 중소형사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올해 3분기 국민연금의 거래증권사 중 최고등급인 1그룹에는 대신증권과 현대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대형사와 HMC투자증권, KB투자증권 등 중소형사가 고르게 포진해 있다. 그러나 정량평가만 하면 상위등급은 대형사가 싹쓸이할 가능성이 크다.
대형 F 증권사 관계자는 “감정에 호소하는 접대보다는 리서치 등 실력으로 경쟁할 수 있게 돼 거래증권사 선정 과정이 더욱 투명해질 것으로 본다”며 혁신안을 환영했다.
그러나 중소형 G 증권사 관계자는 “모든 평가를 계량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정량평가로는 질적인 평가에 한계가 있다. 선정 과정이 공정해질 것으로 얘기하지만, 인력이 부족한 중소형사는 오히려 힘들어지는 구조가 됐다”고 하소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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